나를 위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
<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해하기>
---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과거의 체험은“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는 말에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과거에 직면했던 어렵고 불확실한 문제들을 모두 완벽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은혜의 하나님께서 눈앞의 위기도 완벽하게 처리해주실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이런 면모는 다음구절에도 나타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시 138:8).
섭리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은혜로운 목적과 약속을 이루시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약속을 허락하고, 섭리는 약속을 이룹니다.
가.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것을 완전하게 이룹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직면한 상황들에, 보편성, 효율성, 유익함 및 고무적인 영향력이 있습니다.
1. 섭리의 보편성/ 섭리는 (한두 가지 상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모든 상황을 아우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과 관련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십니다. 중대한 문제에서 사소한 문제까지, 가까운 일이나 먼 일을 막론하고, 성도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 하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2. 섭리의 효율성/ 섭리는 성도가 직면한 상황을 다루어 완전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일을 행하기 시작하면, 계획에 따라 완벽하게 행하십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섭리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거부하거나 간섭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신다는 점입니다.
3. 섭리의 유익성/ 섭리의 결과는 항상 성도를 이롭게 합니다.
섭리는 모든 일을 성도의 유익을 위해 일합니다. 우리의 불평과 몰이해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섭리는 성도의 참된 유익과 행복을 저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약속은 오직 성도의 행복을 지향합니다.
4. 섭리를 묵상하면-위기와 시련의 때에-많은 용기/위로/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마음에 소망과 용기를 주며, 큰 시련 앞에서도 기도할 수 있게 만듭니다. 다윗은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 처했습니다. 사면초가! 그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고,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에게 둘러싸인 듯한 환경에서도, 지금까지 자기를 도와주신 은혜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용기와 소망을 얻었습니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외치며, 주님께 도움을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교회는“...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사 26:12)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의 손길로 인도받습니다. 경건한 성도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대한 기억을 늘 귀한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리차드 백스터 목사/ <성도의 영원한 안식>/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체험한 경험을 꼭 책이 아니라도 마음에 기록해야 한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만 해도 은혜가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를 실제로 경험하면 얼마나 더 은혜가 되겠는가?”
성경의 예를 보면, 모세/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기도의 힘으로 아말렉을 물리친 사건을 책에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여호와 닛시”(하나님은 나의 깃발)이라고 불렀습니다(출 17:14-15). 모르드개와 에스더/ “각도, 각읍, 각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절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 자손 중에서도 기념함이 폐하지 않게 하였더라”(에 9:28) 말씀처럼, 부림절을 제정해 하만의 계략에서 구원을 얻은 사건을 영구히 기념했습니다. 다윗도 “다윗의 기념케 하는 시” 라는 표제를 달아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했습니다. 이 밖에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난 장소에 새 이름을 붙여 그곳에서 경험한 은혜와 구원을 영원히 기념하게 한 성도들도 있습니다.“벧엘”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곤경에 처한 하갈도 광야의 샘 곁에서 천사를 만나 도움을 얻은 후, 그곳을 “브엘라해로이”(나의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샘)이라고 부르며 기념했습니다(창 16:14). 또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해, 그분의 성호를 새롭게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창 22:14)라는 호칭을, 기드온은 “여호와 살롬”(삿 6:24)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감사하고 기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가끔 자신을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신 하나님” 이나,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신 주 하나님” 또는 “북쪽 나라에서 그들을 모으신 하나님”으로 소개하시는데, 이것도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행하신 은혜로운 섭리를 상기시켜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사역에 대한 두 가지 이해>
먼저, 온전하고 완전한 이해입니다. 이것은 후에 완전한 상태에서나 가능합니다. 성도는 섭리사역의 전체와 세부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립니다. 그 때가 되면 개개의 섭리사역이 왜 필요했고, 또 서로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었는지는 물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구원계획이 효율적이고 질서 있게 이루어진 과정을 낱낱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다른 하나는,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이해입니다. 영광에 이르는 신앙여정을 가는 동안, 한 가지 행동이나 혹은 관찰이 가능한 일련의 행동과 몇 가지 상황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 13:7)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상기 주님의 말씀을 당시의 특정상황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섭리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안태길담임목사의 설교 중에서)